부장님과 단둘이 4시간 회식한 썰

디제이님 안녕하세요. 저는 입사 7개월 차 신입사원입니다.

이거 진짜 라디오에서 읽어주시면 저희 회사 사람들 다 알아볼까 봐 무서운데… 그래도 너무 억울해서 보내봅니다. 들어주세요.

지난주 수요일 오후 4시쯤이었어요. 회사 사내 메신저에 알림이 떴습니다.

[부장님] 이번 주 금요일 7시 어때요? 다들 시간 되면 회식이나 한 번 합시다~ㅋㅋ 장소는 신촌 ○○삼겹살집!

저 그거 보고 진짜 벌떡 일어났어요. 왜냐면, 우리 부서 회식 1년에 두 번밖에 안 하거든요. 근데 제가 입사하고 한 번도 회식이 없었어요. 입사 동기들은 다 부장님이랑 친해졌는데 저만 어색했단 말이죠.

그래서 저, 답장을 광속으로 박았습니다.

[저] 네 부장님!!!! 무조건 가겠습니다!!!! 🙇‍♂️🙇‍♂️🙇‍♂️

…답장이 안 와요.

그런데 저는 생각했죠. '아 부장님이 바쁘셔서 다른 분들 답장도 못 보시는 거구나.' 그리고 다른 사람들 답장이 없는 게 좀 이상했지만, '다들 카톡 잘 안 보시나 보다' 했어요. 신입의 무지란 무서운 겁니다.

금요일이 됐어요. 저는 6시 50분에 도착해서 가게 앞에서 부장님을 기다렸습니다. 머리도 새로 감고, 가글까지 하고, 진짜 인생 최대로 단정한 상태로요.

7시 정각. 부장님이 나타나셨어요.

부장님이 저를 보시더니, 살짝 멈칫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두리번두리번 하시면서 가게 안을 보시고는…

[부장님] "어… 어? 자네… 혼자 왔어?"

[저] "네? 네…!"

[부장님] "다른 사람들은…?"

[저] "어… 아직 안 오신 것 같습니다!"

[부장님] "..."

[부장님] "..........."

부장님이 핸드폰을 꺼내셨어요. 그리고 채팅방을 한참 보시더니, 한숨을 푹 쉬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거… 옛날 프로젝트 단톡방인데."

네. 그 단톡방은 2년 전 끝난 프로젝트 사람들 단톡방이었고, 부장님 빼고 다 나간 상태였습니다. 부장님은 그걸 모르고 그냥 우리 부서 단톡방인 줄 알고 보내신 거고요.

근데 거기 남아있던 단 한 사람, 그게 저였습니다. 저는 그 프로젝트 막바지에 신입으로 잠깐 합류했었거든요. 그래서 단톡방에 그대로 남아있었던 거예요.

부장님이 식은땀 흘리시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그…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 다시 연락해서…"

"아냐 됐다. 됐어. 우리 둘이 먹자."

그렇게 저의 지옥이 시작되었습니다.

부장님이랑 저랑 4인용 테이블에 마주 앉았어요. 삼겹살 4인분이 깔렸습니다. 둘이서 먹기엔 산더미 같았어요.

처음 30분은 침묵 속에서 고기만 구웠습니다. 부장님이 고기 뒤집으시면, 저도 뒤집고. 부장님이 한 점 드시면, 저도 한 점 먹고. 부장님이 소주잔 비우시면, 저도 비우고. 무슨 거울 놀이 같은 거예요.

그러다가 1시간쯤 지났을 때, 부장님이 소주를 한 잔 더 따르시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야, 김 사원아."

"네 부장님!"

"내가 사실 작년에 이혼을 했거든."

…

…

…저, 그날 4시간 동안 부장님 인생사를 풀 패키지로 들었습니다.

  • 첫사랑이 누구였는지 (대학교 1학년 과 CC 김미선)
  • 왜 이혼하셨는지 (라이프 스타일 차이라고 하셨지만 한 시간 더 들으니 진짜 이유 나옴)
  • 큰아들이 요즘 말을 안 듣는다는 얘기
  • 회사에서 누가 누구 뒷담화하는지 전 부서 인사 정보
  • 본인이 25년 전에 못 본 승진 얘기 (이게 제일 길었음)
  • 그리고 다시 첫사랑 얘기 (술 더 드시고 다시 시작됨)

저는 4시간 동안 정확히 다음 세 마디만 반복했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진짜요…?" "부장님 힘드셨겠어요…"

표정 근육이 다 풀려서 나중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삼겹살은 다 식어서 비계가 하얗게 굳어가고, 제 영혼도 비계처럼 굳어갔어요.

11시쯤 부장님이 비틀거리시면서 일어나셨습니다.

"야, 김 사원." "네 부장님." "오늘 고마웠다." "아닙니다 부장님."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알았지?" "...네 부장님."

택시 잡아드리고,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진짜 한 5분간 멍하니 있었어요. 인생이 뭔지.

근데 디제이님, 진짜 반전은 그 다음날입니다.

월요일 출근하니까 부서 사람들이 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거예요. 옆자리 대리님이 슬그머니 오시더니 그러시는 거예요.

"야 너… 부장님이랑 무슨 일 있었냐?"

"네…? 왜요?"

"아니, 부장님이 임원 회식 가서 자랑하셨대. **'우리 부서에 쩌는 신입이 있다'**고. **'4시간 동안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인재'**라고. **'요즘 보기 드문 큰 그릇'**이라고."

"..."

"너 이번에 부장님 추천으로 해외 연수 후보에 올라갔다는데?"

저,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렸습니다.

부장님, 저 큰 그릇 아니에요. 저 그냥 도망갈 곳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결론입니다, 디제이님.

제가 이번에 일본 도쿄로 3개월 연수 가게 됐어요. 솔직히 너무 좋아요. 좋은데… 부장님이 자꾸 "다녀와서 또 회식하자" 하세요.

저, 다음 회식에는 꼭 다른 단톡방인지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회식 자체를 못 가게 그날 해외 출장이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신청곡은요, **김건모의 '잘못된 만남'**으로 부탁드립니다. 부장님이랑 저랑 그날 만남이 진짜 잘못된 만남이었거든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디제이님.

추신. 이거 읽으실 때 우리 부장님 청취 시간이라 진짜 라디오 듣고 계실 수도 있어요. 부장님, 혹시 들으시면… 저 아닙니다. 다른 회사 김 사원입니다.

Posted May 4, 2026, 12:46 PM U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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