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새끼 같다던 우리 아빠

디제이님, 안녕하세요.

저희 아빠는요, 평생 저한테 "사랑한다" 한 번 안 해보신 분이에요. "잘했다"도 거의 안 하시고요. 제가 대학 합격했을 때도 "음, 그래"가 다였어요. 결혼할 때 식장 들어가면서도 표정이 화나 보였는데, 나중에 사진 보니까 그게 아빠가 울지 않으려고 참는 표정이었더라고요.

아빠랑 저랑 그렇게 살았어요. 30년을. 어색한 부녀로요.

근데 디제이님, 저희 사이에 5년 전부터 다리 하나가 생겼어요. 다리 짧고, 털 복슬복슬하고, 코 까만 다리.

이름은 콩이예요.


5년 전, 제가 회사에서 너무 힘들 때 충동적으로 강아지를 데려왔어요. 말티즈 한 살. 본가에 들고 갔는데, 아빠가 보시자마자 그러시는 거예요.

"야. 저게 뭐냐."

"강아지요."

"쥐새끼 같은 게 뭐 강아지냐. 갖다 버려."

"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료값이 얼마라더라."

"..."

그 첫날 아빠는 콩이가 거실에 들어오는 것도 싫어하셨어요. "저거 내 슬리퍼 근처에 오면 발로 차버릴 거다." 진짜 그러셨어요. 엄마랑 저는 콩이를 안방에 숨겨놓고 키웠어요.

그러다가 2년 전에 제가 결혼하면서 부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시댁 아파트가 반려동물 안 되는 곳이라, 콩이를 본가에 두고 와야 했어요. 엄마한테 부탁드릴 때, 거실에서 신문 보시던 아빠가 큰소리로 그러셨어요.

"야! 절대 못 키운다! 데려가! 너네가 데려가!"

"아빠, 시댁이 동물 안 된대요…"

"그럼 어떡해! 우리도 못 키운다!"

"엄마…"

"내가 알아서 할게. 두고 가."

엄마가 그러시는 동안 아빠는 신문을 탁탁 털면서 거실 왔다갔다 하셨어요. 진짜 화나 보이셨어요. 저 그날 콩이 두고 오면서 차에서 한참 울었어요. 아빠가 콩이 미워하실 게 뻔하니까요.


그런데 디제이님.

3개월 후에 본가에 갔는데요. 콩이가 아빠 안방 침대 위에서 자고 있었어요.

아빠는 거실에서 신문 보시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어, 왔냐."

"아빠… 콩이 왜 안방에서 자요?"

"어? 어. 거실에 두면 시끄럽게 짖어서. 어쩔 수 없이."

"..."

"아니, 진짜로. 어쩔 수 없이야."

엄마가 부엌에서 픽 웃으시는 걸 봤어요.

그 다음번에 갔을 때는, 콩이 옷이 일곱 벌이 있었어요. 색깔별로요. 아빠가 그러시는 거예요.

"엄마가 자꾸 사 와. 미친 사람처럼."

엄마가 옆에서 그러시는 거예요.

"저거 다 너희 아빠가 사 온 거야. 시장 갈 때마다 한 벌씩."

"...어머니."

"야! 김여사! 가만히 있어!"

또 그 다음번에는, 아빠 핸드폰 잠금화면이 콩이 사진이었어요. 제가 어이없어서 "아빠, 이거 뭐예요?" 물었더니, 아빠가 핸드폰을 휙 뒤집으시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어… 그게… 엄마가 깔아줬어. 나는 모른다."

엄마가 부엌에서 또 픽 웃으시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아빠가 본인 손으로 깔았어. 사진관까지 가서 인화도 해 왔다, 너희 아빠."

저,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어요. 아빠가 콩이를 사랑하시는구나.

근데 절대 인정 안 하실 거잖아요. 한국 아빠니까요.


결정적인 순간은, 작년 여름이었어요.

제가 본가에 미리 연락 안 하고 갑자기 갔어요. 회사 일로 서울 출장 왔다가 잠깐 들른 거였거든요. 비밀번호 누르고 들어갔는데, 거실에서 아빠 목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누구랑 통화하시나 했는데, 아니었어요.

아빠가 거실 바닥에 앉아서, 콩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얘기하고 계셨어요.

"야, 콩아."

"..."

"우리 딸 보고 싶지?"

"..."

"아빠도 보고 싶어. 근데 멀리 살잖아."

"..."

"근데 네가 있어서 자주 와. 그치? 너 보러."

"..."

"그러니까 우리 콩이가 오래오래 살아야 돼. 알겠지? 너 없으면 우리 딸 자주 안 와. 그러니까 오래 살아."

저, 현관에 그대로 서서 진짜 1분 동안 못 움직였어요. 신발도 못 벗고요.

콩이는 자기 보러 오는 줄 아셨던 거예요. 아빠는요.

저 보러 오는 거였는데. 사실은요.

근데 아빠는 **"딸이 아빠 보러 자주 안 온다"**는 말을 절대 안 하시는 분이잖아요. 30년 동안 한 번도요. 그래서 그 말을 콩이한테 하시는 거였어요. 강아지한테요.

저, 현관에서 살금살금 다시 나가서, 5분 후에 도어락 누르고 다시 들어갔어요. 처음 온 것처럼요. 아빠가 그러시는 거예요.

"어, 왔냐. 어쩐 일이야 미리 말도 안 하고."

"그냥요. 콩이 보고 싶어서."

"...그래. 콩이가 좋겠다."

저, 그날 밤에 안방에서 엄마 붙들고 한참 울었어요.


올해 봄에, 콩이가 아팠어요.

심장이 안 좋다고 하더라고요. 말티즈는 노견 되면 심장이 자주 안 좋대요. 콩이 이제 일곱 살이에요. 사람으로 치면 마흔 후반.

엄마한테 전화로 듣고, 저 그 주말에 바로 KTX 타고 올라갔어요. 동물병원 응급실로 바로 갔어요. 거기 가니까 아빠가 진료실 앞 의자에 앉아 계셨어요.

근데 아빠 표정이 진짜 이상하셨어요. 무서운 표정도 아니고, 슬픈 표정도 아니고, 그냥… 무너진 표정이요.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가 저 보시더니 그러시는 거예요.

"...왔냐."

"아빠, 콩이 어때요?"

"...의사가 좀 위험하대."

"..."

"...야."

"네."

"나 콩이 못 보내겠다."

저, 그 말 듣고 아빠 옆자리에 털썩 앉아서 펑펑 울었어요. 아빠도 옆에서 어깨가 들썩이시더라고요.

평생 처음 봤어요. 우리 아빠 우는 거.

엄마 돌아가셨을 때도 안 우셨던 분이에요. 아니, 그때도 우셨겠죠. 우리한테 안 보였던 거지. 그렇게 사신 분이에요.

근데 그날, 동물병원 진료실 앞에서, 우리 아빠가 환갑 넘어서 강아지 때문에 우셨어요.

저는 그 옆에서, 평생 못 해본 짓을 했어요. 아빠 어깨에 머리를 기댔어요. 30년 만에요. 아빠도 안 빼시더라고요.


콩이는요, 다행히 살았어요. 수술 잘 받고, 약 먹으면서 잘 지내요. 의사가 잘하면 몇 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저, 그날 이후로 본가를 자주 가요. 주말마다요. 부산에서 KTX로요. 남편이 "왜 그렇게 자주 가?" 물으면 "콩이 보러" 그래요.

근데 아빠는 알고 계세요. 저 콩이 보러 가는 거 아닌 거.

지난주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아빠가 차로 역까지 데려다주시면서 그러시는 거예요.

"야."

"네."

"콩이 잘 있을 테니까 걱정 마."

"...네."

"그리고… 너도 너무 자주 안 와도 돼. 멀리서 힘들잖아."

"..."

"근데 오면 좋고."

저, 차 안에서 웃으면서 울었어요.

아빠 평생 처음으로 저한테 "보고 싶다"고 비슷한 말이라도 한 거예요. "오면 좋고." 이게 우리 아빠 표현이에요. 사랑한다 그런 말 평생 못 하시는 분이, 그래도 "오면 좋고"래요.


디제이님, 콩이는 진짜 신기한 강아지예요.

쥐새끼 같다던 강아지가, 30년 어색했던 부녀 사이에 다리를 놓아줬어요. 우리 아빠 처음으로 울게 만들었어요. 처음으로 "오면 좋고"라고 말하게 했어요.

아빠가 콩이한테 "오래 살아라" 하시는 게, 진짜 콩이한테 하는 말이 아닌 거 알아요. 저한테 더 오래 보고 싶다는 말인 거 알아요.

콩이도 알 거예요. 똑똑한 강아지니까요.


신청곡은 김광석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는 너무 슬프니까. 양희은 '아침이슬'… 도 안 어울리고.

god '어머님께' 부탁드려요. 가사가 좀 다른 결이긴 한데, 우리 아빠 들으시면 펑펑 우실 노래거든요. 라디오 켜놓고 약주 하시는 분이라, 오늘은 이 노래로 한 번 우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빠가 혹시 들으시면, 한 마디만 전해주세요.

아빠. 저 다음 주에 또 갈게요. 콩이 보러요. ...아빠도요.

— 콩이 누나 드림

Posted May 7, 2026, 12:27 PM UTC

10
Loading comments…